"노래와 사회운동, 병행됐으면..서로 나누고 이야기하는 공연 하고 싶어"

 

[포쓰저널] 싱어송라이터 박창근은 쉽게 정의되지 않는다. 정말 희귀한 상품(?)이다. 

누구와도 닮지 않은 독창적인 미성에 포크, 록, 발라드, 기타, 작사, 작곡까지 섭렵한 다재다능한 숨은 고수 음악가로만 그를 설명하기엔 부족하다. 생각과 철학을 정제된 언어로 풀어 놓는 그와 마주하면, 그의 노래를 처음 들었을 때 받았던 충격 만큼 사고의 깊이에 또 한번 놀라게 된다.

그는 음유시인이자 사회운동가였던 존 레논이나 닐 영을 담고 싶어하면서도, 사회와 타협하기도 하고 대중적인 연예인이 되어 스스럼없이 망가지기도 한다. 지천명(知天命)의 나이가 무색한 소년같은 얼굴엔 해탈한 고승(高僧)의 미소도 숨어 있다. 

소외받은 이들과 소수의 마니아들에게만 향유됐던 그의 노래들을 이제서야 세상이 알아주기 시작했다. 그는 자신의 노래가 상대를 이해하려하지 않고 서로 적이 되어버린 세상에서 서로를 만나게 하는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조금 늦게,  우리 곁에 성큼 다가온 국민가수 박창근의 생각을 들어 봤다.

- 음반을 꾸준히 냈다. 자작곡이 300곡이 넘는데.

▶ 정규로 10곡 이상 수록한 음반을 4개 내고 리패키지로도 하나 냈다. EP 음반, 락 그런지 음반, 프로젝트성 듀엣 음반도 있었고 한 살림 음반도 냈었다. 음원만 내는 디지털 음반은 매년 내왔다. 발표한 것 외에 늘 생각나는 거를 끄젹여 놓았다. 발표한 곡은 70~80곡 되는 것 같다. 저한테 마니아 위주의 음악이라고들 얘기한다.  4집부터는 약간 탈피하려고 노력했다.

- 가장 아끼는 앨범은.

▶ 굉장히 어려운 질문이다. 다 소중한 거다. 1집 음반은 디지털 되기 전에 릴이라고 해서 아날로그 형식으로 만들어 의미가 있다. 대구에서 만들었다.

2집부터는 연주, 편곡 등에 참여해서 또 소중하고, 다 소중하다. 알려지지 않은 노래 중에서 감성이 좀 다른 ‘논 그런지’(Non Grunge)’ 라는 음반이 있는데 개인적으로 아끼는 음반이다.

사람들이 제일 많이 모르는 곡일 거고. 또 하나는 ‘2020 이야기’라고 하는 것들. 많은 노래 중에 이러한 노래들도 간혹 있어줘야겠다는 생각이다. 창작하는 사람이 사회 안에서 계속 같이 고뇌하고 고민하고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노래들이어서 소중하다.

 

'논 그런지' 앨범 표지./출처=박창근 노트.
'논 그런지' 앨범 표지./출처=박창근 노트.

 

- '논 그런지'에 수록된 곡들은.

▶ 운명도 거칠고. 늪도 거칠고. 내적인 고요함이 밖으로 막 뭔가 어쩌지 못하는 감정이 표출된 그런 느낌이 들었던 것 같다. 만들 때.

(논 그런지 중) ‘운명’ 같은 경우는 산낙지를 먹으면서 이(산낙지의) 고통과 지금 현재 나의 생존의 고통을 결부해서 생각해본 노래다. 사랑, 여행에 관한 노래도 있다. 상업적인 고뇌가 없다면 이런 노래를 하고 살면 좋을텐데 하고 생각했던 노래들이다.

이 노래들을 더 아끼는 이유는 녹음을 해서 컴퓨터에 저장했는데 하드디스크가 소실이 돼 연습해 놓은 것만 담겨있는 것을 찾아내서 수정·보완하지 못하고 그대로 마스터링해서 발표됐다. 들어보면 발란스가 잘 안맞기도 하고 그런다. 그 자체가 저한테는 저의 역사 같은 느낌이다. 그래서 아끼는 음반이다. 일렉 기타를 치면서 약간 카타르시스를 좀 느꼈던 음악들이다. 수록됐던 노래들은 수년 전 만든 노래들도 섞여 있는데 발표는 좀 뒤늦게 했다. 뮤지컬만 하다보니 저를 자꾸 잃어버리는 거 같아 더 늦기 전에 빨리 모를 내자 생각했었다.

- ‘2020 이야기’ 앨범에 대해 소개한다면.

▶ 코로나 초입 몇 달 지난 상태에서 마스크 사재기 대란이 일어나고 했다. 그런 상태에서 신문에 난 난민들의 너무 형편없고 어쩔 줄 모르는 상황을 보고 놀랐다. 내가 이거(코로나19) 때문에 노래를 못하고 있고 내일은 생존이 가능할까하는 생각을 했던 게 저들에 비해서는 완전 사치구나 했다. 마스크 하나가 굉장히 크게 다가 오더라. (땅에) 떨어져 있는 마스크도.

그들은(난민들은) 새로운 마스크를 쓸수 없는 상황이었다. 뭐라도 입을 가리어야 되는 사진들을 보고 착안이 된 것 같다. 그 노래가. 우리가 우주에 떠도는 쓰레기 같은 느낌도 받았고 그런 인생들이 생명들이. 과연 지금 이게 뭘까라는 것에 대한, 이 삶과 저 삶의 괴리적인 삶에 대해.

 

'2020 이야기' 앨범 표지./이미지=박창근 노트
'2020 이야기' 앨범 표지./이미지=박창근 노트

 

- 노래를 통해 ‘공존’을 많이 얘기한다. ‘공존’이란.

▶ 내가 겪지 않고 있지 않더라도 나중에 결과론적으로는 나한테도 다 온다라는 점, 톱니바퀴처럼 연결이 돼 있다는 것이다. 여기 분들이 행복하게 사시는데 저기 건너에는 막 굶주리고 산다고 하면 이어지지 않는 걸로 알게 되나? 어느 순간 똑같이 피해를 보게 된다.

공존이라는 것은 내가 지금 상황이 아니더라도 같이 겪게 된다. 지구 자체가 없어져 버리는 것과 똑같은 개념이다. 우리가 그것을 먼 미래라고 생각하고 약간 쉽게 이해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봤다. 1집, 2집 그리고 계속 그런 이야기들은 약간 돌려서 다 담았던 것 같다.

구체적으로 ‘우린 어디로 가는 걸까요?’란 곡이 있다. 처음에는 가축의 이야기들이 나오고, 난 이렇게 살려고 태어난 게 아니다는 얘기가 나오고 마지막에는 사람의 이야기가 나온다. 난 이런 상황이야, 미친 괴물이 됐어, 이거 나만 잘못한 거야? 이런 얘기들을 담아봤다. 

아프지만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저도 상처 안 받고 싶고 편하게 살고 싶은데 저만 이런다고 되는 게 아닌 거 같다. 어쩔 수 없이 같이 이 지구, 우주 안에서 같이 숨쉬고 살아야 하는 거다 라는 게 느껴진다. 이런 것에 대한 고민은 아마 모든 분들이 하실 거 같다. 밥을 먹다가도 아 이거 나만 행복하니까 되겠구나 이렇게만 생각하면 편할 텐데. 아니쟎나. 살면서 이런 고민들을 창작을 통해 좀 표현해보고 싶었던 것 같다.

-'별되어 내리네'는 세월호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노래다. 어떻게 만들게 됐나.

▶ 4월은 원래 좀 하.(한숨) 발표 안한 노래가 좀 있긴 하다. 애잔하다. 4.3도 있고 봄이 3월에 만발하다 4월에 이상한 바람이 좀 세게 불면서 5월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슬픈 거다. 이상하게 4월에 아픈 일들이 세계에서 많이 일어난다. 그 걸(‘별되어 내리네’를) 지을 때는 세월호가 뉴스를 통해 나오는데 정말 굉장히 황당하는 생각을 하면서 이게 왜 이렇게 돼지? 모지 이게? 그러면서 혼자 막 못 먹는 술을 먹으면서 가사를 그렇게 지었던 것 같다. 이거 미친 거 아냐? 뉴스도 이상하고. 그때 가사를 지었다. 이후에 가사는 약간의 수정이 있었다.

- '사랑'을 주제로 한 노래도 많다. 경험에서 나오나.

▶ 노래를 잘 짓는 분 중에 장범준씨의 ‘여수 밤바다’가 있다. 그 얘기를 잠깐 들은 적 있는데 밤바다를 거닐기 전에 만들었다고 하더라. 아 맞어! 이런 생각을 한 게. 저희 같은 사람은 직접 상황에 처하면서 막 지어지는 게 있고, 또 많은 부분들은 약간 뒷발치에서 그것을 그려내고 상상하면서 곡을 만들어내는 경우가 더 많다. 그래서 노래들이 제 이야기도 있고, 이렇게 보다가 저분의 이야기를 나도 저랬을 거 같은데 라는 얘기도 있고, 모든 게 내 이야기인 것처럼 머릿 속에서 상상이 되는 것도 있고, 여러 가지인 것 같다.

- 노래를 만들 때 영감은 어디서 얻나.

▶ 늘. 모 그냥. 지금도 이런 기운, 바람들, 여기서 나는 지금 이성을 생각할 것인가 그러면 그게 나온다. 너무 아픈 이야기들 떠오른다 그러면 그렇게 느껴지는 것 같다. 약간 감정적인게 작용하는 거 같다. 상황 상황.

- 김광석 노래로 엮은 뮤지컬 주연을 수년간 맡았다 관뒀다.

▶ 햇수로 4년 했다. 제작자가 대본을 만들 때 저의 이야기를 갖고 만들었다. 그래서 애착을 많이 가졌었고 같이 시작했는데 1년, 2년 하면서 무명의 뮤지컬에서 입소문을 타면서 방송국에서 인터뷰도 하고 하면서 커졌다. 그러면서 저의 생각. 제작진의 생각이 달라 가기 시작했다.

저는 좀 더 음악적인 순수성을 더 보강해서 남는 작품을 만들고 싶다는 욕심을 많이 가졌고. 제작진은 그러한 순수성 이외에 생각할 것이 많았던 것 같다. 현실의 조건 속에서 생존의 부분이었다고 할까..바라보는 관점이 조금 달라서 어렵사니 그만두게 됐다. 거기서는 붙잡는 걸 저는 나오는게 맞는 것 같고, 다른 후배들이 연장을 더 하는 게 이 뮤지컬을 봤을 때 오히려 더 오래할 수 있는 길이기도 하겠다 해서 약간 떼를 써서 나오게 됐다. 변질은 됐지만 맨 처음 받아본 대본의 주인공 이름도 제 이름이 그대로 쓰여 있었고, 내용 또한 제 이야기 같아 진짜 많이 무대에서 울고 웃고 했었다.

늘 제가 이렇게 막 선택하는 스타일이다. 나와보니 막막했던 게 뮤지컬만 하다보니 평소 초청해주는 공연까지 불러주는 곳도 적어져 다시 또 시작하는 마음으로 하게 됐다.

 

 

- 왜 스스로를 고난스럽게 하나.

▶ 현실에 뜻하지 않게 뭔가 만들어져버린 주변의 현실 상황이 제 마음의 괴리를 막 불러 일으키고 현실에 안주가 안되고 계속적인 내적 방황을 자꾸 해온 것 같다. 항상 뭔가 불안정하고 불안하고. 먹을 게 있고 잠들 곳이 있고 평안해지는 현실이 와도 그 자체가 저는 뭔가 또 불안한 거다. 지금 생각하면 그런 것들이 저에게는 정서적으로 평온함을 주지 못하는 거였나 하는 생각?. 불교 용어로 사바세계는 감내하고 견뎌야 되는 세계라고 한다. 언젠가부터 그 말이 이해가 되더라.

저는 불안정함을 오히려 감내하고 즐기면서 창작을 통해 표출하고 토해 내면서 그 순간의 즐거움, 행복을 느끼고 이것이 계속 순환이 될 수 밖에 없겠다는 생각을 스스로에게 하게 되더라. 사실 어쩌면 이것은 행복이라기 보단 쾌락에 가깝다. 나이가 들면서 이러한 쾌락은 점점 적어진다. 웃자고 방방 뛸 때도 있지만 진심은 여여(담담)할 때가 가장 좋다.

- 믿는 종교는.

▶ 가톨릭에서 세례를 받았었다. 어머니가 가톨릭이라서 아버님도. 그런데 모르겠다. 종교가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한 것 같다. 다 좋은 거 같다. PBC, BBS, CBS, 원불교까지 불러주면 다 가고 나누고 그들도 편하게 대해 주고, 라디오 방송도 다 다니고 했다.

저라는 사람은 좋은 가치라고 생각되는 것에는 흡수가 빠른데 우리가 알 수 없는 미래의 어떤 보상과 복을 비는 기복 신앙적 종교는 나와는 좀 안맞는 것같다. 그러나 우리는 모르기 때문에 불안해하고 경험해보지 못했기에(미래) 좀 더 나아질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 아니겠는가? 그런 의미에서 기복신앙을 꼭 불편해 할 필요만은 없다고 본다. 다만...모든 걸 나누고 가난하게 살다간 예수와 붓다를 추앙하는 절과 교회가 때때로 전혀 다른 모습으로 존재할 때 괴리감을 느끼며 안타깝다.

- 그런 위선에 대한 것들을 노래로 얘기한 것 같다.

▶ 1집 ‘생각’이라는 곡이 위의 제 답변처럼 교회가 점점 커지고 상업화되고 기업화되고 재산을 필요 이상 축적하게 되면서 세력 확장을 목표로 삼아가는 그 대형화되는 모습을 비판해보고 싶었던 곡이다. 그 안에서 예수의 모습을 찾아볼 수 있나? 라는 물음을 던졌던 노래였다.

- 가치관은.

▶ 30대까지 가장 존경했던 분은 가장 생존했던 사람으로서는 ‘스콧 니어링’ 부부였다. 정말 그 시대에 너무 옛날인데. 자본시장 안에서 물질에 엮어진 삶을 안겠다고 했던 분이다. 사상가이자 철학가다. 다 버리고 영국 버몬트 땅, 주인없는 땅을 부부가 직접 일궈 살아간다. 한평의 땅도 주인이 있는 지금의 현실로는 불가능한 일이다.

지금은 그렇게 극단적인 뭘 원하는 건 아니고 최소한 할 수 있는 걸 하면서 살자, 최소한. 그런 느낌이다. 가치관이라고 하면 그런 거 같다. 해로운 사람이 덜 되자?. 뭔 얘기죠? 하하.

 

'우린 어디로 가는 걸까요' 앨범 표지./이미지=박창근 노트
'우린 어디로 가는 걸까요' 앨범 표지./이미지=박창근 노트

 

- 노래로 사회운동을 하고 싶은 건가.

▶ 노래와 사회운동이 병행됐으면 좋겠다. 2집 음반에 대한 내용들이 생명에 대한 거다. 타 생명에 대한 얘기도 있었고. 그 이후에 ‘우린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라는 노래가 있다. 약간 실험적이고 사회에 대한 공격적인 노래다. 그렇게 알려지지 않고 영향력 없었을 때 유명해지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었는데 참 부러운 게 있었다. 뭐냐면 영향력이 있어서 뭔가를 행했을 때 같이 막 공감해주고 많은 분들이 따라주고 하는 부분들이 되게 부럽더라.

닐 영이 매년 공연을 여는데 농촌, 농민들의 환경 개선 그런 것들이 뭉뚱그려보면 괜챦게 살자다. 환경적인 운동, 몸이 불편한 아이들을 위한 브릿지 스쿨 공연 같은 것도. 저도 한때 법륜 스님하고 같이 노래도 해드리고 했었는데 제가 좀 더 자유로워지면 이런 일 들도 동참하고 싶고, 매년 강원도에서 박창근의 환경콘서트를 해왔는데 좀 더 세련되게 만들어 진행해보고 싶다.

환경, 생명운동이든 뭐든 너무 골수적으로 상대 이야기를 듣지 않고 가다 보니 항상 문제가 생긴다. 저는 오히려 그 극단적인 게 운동에 방해가 된다고 생각한다. 우리끼리 좋아서 하는 운동이 되더라. 대학교 때 운동도 마찬가지고. 저는 그런 분위기가 아니라 가능한 선에서 누구는 조금할 수 있고 또 어떤 사람은 조금 더 할 수 있고 지금 형편상 안되는 사람도 있고, 그것까지 다 이해가 되는 선에서 서로 나누고 이야기하자라는 공연들을 하고 싶다. 환경콘서트라고 환경만 하는 게 아니라.

- 채식주의자였는데 지금은 아닌 것 같다.

▶ 잠시 정정하면 ‘채식주의자’라는 말은 많은 오해의 소지가 있다. 그래서 어쩔수 없이 나는 ‘베지테리안’이란 용어를 쓴다. 사전적 의미가 참 괜찮은 뜻이 담겨있다. 많은 고민을 했다. 10년 (채식주의자를) 하면서 그분들(채식주의자)을 만나 싸우기도 하고. 너무 좋은 일이기는 하나 그게 정말 좋은 일인가 하고 물었을 때 끼리만 하게 되면 이건 전파력이 없다. 힘도 안 생기고.

오히려 그런 의미들이 도태되는 것 같다. 많은 고민을 했다. 불교의 탁발같은 경우 주는 데로 먹어? 고기를 주면 먹어? 라고 했을 때 그때 고기는 고기가 아닌 것으로 여길 수 있는데 한 단계 높은 거다. 가축들의 처우 개선, 환경·온난화를 위한 의미들은 좋은데 그걸 현실적인 상황을 다 부정하고 그것만 주창하니까 서로가 적이 되고 싸우게 되더라. 그래서 깨달았다.

제가 받아들일 수 있는 부분은 받아들여야 겠다, 내가 다 옳은 게 아니라서 그걸 굉장히 크게 깨달았다. 제가 40대 때. 그리고 뮤지컬 할 때 다시 주어지는 대로 먹기를 노력했다. 대학로 배우들은 고기를 아주 좋아하더라. 식사시간만 되면 불편하고 불편함을 주게 되더라. 그때부터 먹기 시작했다. 생각을 정리하면서 처음에는 이럴 수 있는 당위성을 찾다가 약간 얄팍하게. 조금씩 생각이 정립되더라. 꼭 먹고 안먹고의 경계심을 넘어 나은 방향, 대안으로의 운동성을 가질 수 있는..그런 의미에서 우리 모두는 각자 식생활과 상관없이도 베지테리안 일 수 있다.

- 현재 우리 사회의 가장 큰 문제는 뭐라고 생각하나.

▶ 다 중요한데 지금 정말 중요한 것은 정치적으로든 뭐든 이제는 너무 뻔뻔하다. 사람들이 만나서 소통을 하면 뭔가 다 유연해진 척 한다. 몇시간 씩 얘기한다. 그런데 상대방 얘기를 안 듣는다. 이쪽도 저쪽도. 그것이 보기에 더 힘들다. 정치든 어디든 만나서 사람과 사람이 하면 뭔가 좀 이해가 되면 내가 좀 이렇게 아 맞아요 하고 인정을 하고 그렇게 한번 해보겠어요 하는 서로 간에 이런 이해가 안되고 너무나 다들 말을 잘하는데 만만하지가 않다.

 

TV조선 오디션 '내일은 국민가수' 출연 당시.
TV조선 오디션 '내일은 국민가수' 출연 당시.

 

- 소통이 안되는 우리 사회의 문제를 노래가 해결할 수 있나.

▶ 그런 얘기들을 저까지 하고 덤비면 사람들이 저를 당연히 멀리할 것 같다. 그런데 이번에 국민가수 나왔을 때, 생각만 해도 이거 어떻게 했지 생각이 들 정도인데 다른 친지분들이 한자리에 모여서 제 음악을 듣는 것을 보고 이것이 힘이 되기도 하겠구나 했다. 이 분들이 가정 안에서도 생각이 너무 다르다. 국민끼리도 정치적으로 문화적으로 다르지 않나?. 그때 놀랐다. 외삼촌, 엄마 다 생각이 다른데 저를 위해 앉아 계신 거 보고 ‘와 이거 나 통일을 이룬 거 아냐’ 하고. 그렇게 됐을 때 대화를 하면 약간 유연해지는 느낌이 있다. 아, 노래는 정답을 내려고 노력하던 노래들, 약간 강한 노래들, 이럴 수 없을까요 라고 토로했던 노래들보다 좀 더 감성을 건드려주고 심금을 울려주는 노래로 일단은 만나게 하는 게 큰 역할인 거 같다라는 걸 이번에 더 느꼈다.

- 과거 민중가수로 불리기도 했다.

▶ 막 구호를 외치는 노래들은 제가 좋아하지 않았다. 군가 식의 노래는 사실은 싫어했다. 대학교 때는 필요에 의해서는 불렀었다. 그런데 제가 선택할 수 있는 입장이 됐을 때는 그런 노래들은 안 불렀다. 감동이 안 왔다. 어거지였거든. 필요할 수는 있다. 저는 그런 노래들보다 오히려 존 레논이 부르는 ‘파워 투 더 피플’은 와 닿았다, 이상하게. 너무 편협한 것일 수 도 있는데 사람을 마음으로 움직일 수 있는 음악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민중가수 이야기를 하셨는데 그때도 생각이 선배님들이랑 동료 가수들이랑은 달랐었던 것 같다. 민중가요는 동학농민운동 이런 거 얘기할 때 우리 민중들이 막 억압을 받고 할 때 쓰이는 민중이란 의미로 이해했다. 저와 반대되는 입장에서는 의식화된 사람들을 위한 노래라고 규정하고 저와 막 싸우게 되더라.

학교 때 제가 생각하는 민중은 대중이었다. 억압을 가할 수 있는 소수의 입장은 민중의 개념에 속할 것인가, 안 속할 것인가는 항상 갈등이었다. 근데 예를들 면 자본가가 있는데 괜챦은 자본가로서 역할을 한다면 좋은 사람 아니냐, 정말 쉽게 얘기해서. 이들을 자본가라고 욕한다면 말도 안되는 일인 거다. 저에게는 그 민중가요(에서의 민중은)는 모두였다. 나는 아니라고 하는 사람은 굳이 데리고 올 필요는 없다.

- 돈을 많이 벌면 뭘 하고 싶나.

▶ 돈을 많이 벌 수 있을 지 모르겠다. 지금은 많지 않지만 좀 잘 쓰고 싶은 마음? 있으면 쓰게 될 거 같은 게 우리 마음들이 다 그렇다. 저기 돕고 싶다 그러면 줄 수 있으면 멋있고 스스로한테 뿌듯하다. 그런데 이걸 주면 내일 어떻게 하지 이런 고민하면 안주는 게 맞다. 그런데 웃긴 건 언젠가 통장의 잔고가 거의 바닥이나 공포감에 휩싸였을 때, 차라리 하면서 어떤곳에 소량이지만 정기후원을 시작한 적이 있다. 그런데 안 죽더라. 의무감이 아닌 나다운 방식이 있을 거라 스스로를 믿는다. 정말 돈을 많이 벌게되면.. 

- 남은 바램은.

▶ 거창한 것보다 안 지쳤으면 좋겠다. 근데 나이가 들어서 그런가 많이 부딪혀서 그런가 약간은 지치기도 한다. 안 지치고 지금 마음으로 오랫동안 노래를 했으면 좋겠다. 뭘 막 하겠다, 이루겠다는 게 아니고. 기타치고 하모니카 불고 해서 많이 만나가고 싶다. 그 장소가 공연장일수 도 있고 어떠한 공간, 저를 필요로 하는 공간일 수도 있다. 그게 어디가 됐든 그렇게 하고 싶은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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